완벽한 그녀에게 딱 한 가지 없는 것
샘솟는 호기심과 시도 때도 없이 술렁이는 감정으로 가득 찼던 일상. “사랑해!”란 말을 버릇처럼 내뱉고 끄적이면서도 정작 사랑에 대해 아무것도 아는 게 없었던, 그때 그 시절. 내게도 마음에 곱게 품은 짝사랑 상대가 있었다. 차마 그 이름 다 적을 용기가 없어, 다이어리에 암호처럼 새겨 넣던 이니셜이 내게도 있었다.
그땐 이런 상상 종종 했었다. 멋진 성인이 되어 자신 있게 거리를 활보하다, 역시나 다 큰 어른이 된 그 아이와 우연히 마주치는 거다. 아주 자연스럽게 “어~머나!”를 외치곤 상대에 대한 호감으로 가득한 눈길을 서로 교환한다. 그리곤 어린 시절 못 다한 핑크 빛 사랑을 시작한다….. 뭐 이런 거.
그러나 그것도 과거와 현재가 매끄럽게 어우러질 때나 가능한 이야기. 아름다운 추억 속에서 샤방샤방 미소 짓던 그(그녀)도 세월과 생활의 무게를 고스란히 느끼며 사는 사람인 것을… 사과 같은 얼굴에 주름이 생기고, 늘씬하던 몸엔 체지방이 과하게 들러붙어있고, 이상과 정의를 위해 뜨겁게 타오르던 가슴은 먹고 사는 걱정으로 굳어버린 지 오래. 날 반하게 만든 그 순수한 미소마저 처세라는 허울로 덮여버린 모습이라면…?
물론 하트로 가득 찬 어린 가슴에 이런 걱정이 들어갈 자리는 그리 많지 않다. 훈훈한 모습의 아이에게 ‘제발 그대로만 자라주거라.’ 주문을 거는 나이 먹은 사람들 마음은, 그만큼 머리가 크지 않고서야 이해하기 힘든 법.

그런 면에서 볼 때, 제나 링크(제니퍼 가너 분)는 참 운이 좋은 아이다. 반짝이 가루 한 번 뒤집어썼을 뿐인데, 17년 후로 훌쩍 날아가 본인은 물론 친구들의 다 자란 모습을 미리 보게 됐으니 말이다. 학교 제일의 인기녀 탐탐(주디 그리어 분)은 성형수술로 외모를 업그레이드했으나 못된 심성은 어른이 되어서도 여전하고… 금빛 머리카락 휘날리며 어린 제나 마음을 사로잡아버린 미소년 크리스는 알코올에 절은 듯한 상태로 택시를 몰며 지저분한 멘트를 날려대는 진상으로 변해버렸고… 통통한 몸매와 선한 미소를 지닌 단짝친구 맷(마크 러팔로 분)은 어린 시절보다 외모는 훨씬 멋져지고 마음은 여전히 넓은 훈남이 되어있었다. (실제로, 제니퍼 가너를 비롯한 주인공들과 꼭 닮은 아역배우를 찾기 위해 미 전역을 이 잡듯 뒤졌다는 사실. 탐탐 아역을 맡은 소녀와 주디 그리어도 상당히 닮은 모습이다.)

이제 30살 제나의 눈길은 크리스가 아닌 맷에게로 향한다. 그러나 제나가 예상치 못 한 문제가 있었으니, 자신 역시 순수한 13살 소녀가 아니라는 사실. 안하무인의 여왕인 톰톰보다 더 이기적이고 생각 없는 비치가 바로 제나 링크의 30살 모습이었다. 어찌나 못됐는지 명절에도 부모님 찾아 뵐 생각 절대 하지 않고 동료 남편과 바람을 피우는 것도 모자라, 자신이 몸담고 있는 회사의 기밀을 경쟁사에 내다팔기까지! 너, 왜 이렇게 된 거야?

30살이 되면 행복할 줄 알았다. 그땐 어린애 취급 받는 일도, 덜 자란 외모에 대한 고민도, 잘 나가는 아이들 뒤치다꺼리하는 수모도 겪지 않을 테니까. 아름답고 여유롭고 자신감 넘치는 여성. 30살이 된 자신의 모습은 그러하리라 기대했다.
그런 그녀의 기대는 대부분 맞아떨어지는 듯 했다. 누구라도 반할 만한 외모를 갖추고, 잘 나가는 잡지사에서 능력을 인정 받으며 당당한 성인으로 살아가고 있는 30살의 제나 링크. 멋진 아파트엔 예쁜 옷과 구두로 가득한 방이 따로 있고, 외출할 땐 잘 빠진 리무진이 대기하며, 인기 스포츠 스타를 애인으로 두기까지. 이만하면 꽤 괜찮은, 아니 완벽한 인생!

그런데 정말 이상하다. 13살 때 꿈꿨던 모든 걸 갖추었는데, 왜 이렇게 마음이 스산한 걸까. 누구 눈치 볼 필요 없이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원하는 건 뭐든 얻어내며 살고 있지만, 그래도 뭔가 부족한 느낌. 그런 허전함을 채워주리라 믿었던 단짝에게선 “우린 더 이상 친구가 아냐.”란 말까지 듣고… 늘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지만, 그녀의 손을 잡고 함께 길을 걸어줄 이는 하나도 없다. 껍데기는 화려하나 속은 텅 비어있다. 그 안을 채우고 있어야 하는 건 ‘순수한 인간성’. 유치하고 별 볼 일 없는 13살 모습은 다 싫다고 하더니, 버려선 안 될 가치마저 내던지고 성장한 것이다.
인간성. 완벽한 그녀에게 한 가지 모자란 점이라 할 수도 있고, 그녀가 완벽할 수 없는 강력한 이유가 될 수도 있다. 우리의 인생이 완벽해지기 위해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게 무엇일까. 부? 명예? 외모? 커리어? 이들은 겉으로 쉽게 드러나기에, 부족하면 메우려는 노력이 금세 수반된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요건을 충족시키기 위해 정신 없이 달리는 사이, 가슴에 담긴 ‘순수한 인간성’이 조금씩 밖으로 떨어져나갈 수도 있다는 사실. 너무 조용하게 빠져나가기에 그 부재를 쉽사리 깨닫기도 힘들다. 그렇다고 인간성만 잘 챙기다간 자본주의 경쟁사회에서 제대로 살아남지 못 할 것 같단 염려가 마음을 짓누르니… 30살 제나를 무작정 나무랄 수만도 없다.

현실적으로 따지고 보면 참 복잡하고 무거운 문제인데, 영화는 그런 심각함을 허락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제니퍼 가너의 싱그러운 매력이, 영화 곳곳에 자리한 웃음 코드에 마구 빠져들게 만든다. 큰 키와 떡 벌어진 어깨, 군살 없는 근육질 몸매의 그녀가 바비인형 옷차림을 하고 ‘스릴러 댄스’를 추는 장면은 그야말로 압권! 원더걸스의 ‘텔미 댄스’에서 과격함이 느껴지면 이상하듯, 마이클 잭슨의 ‘스릴러’ 안무에서 요염함이나 세련됨이 느껴진다면 아주 생경했을 터. 제니퍼 가너였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싶다. 엉뚱하나 바보스럽지 않고, 순수하나 촌스럽지 않고, 귀여우나 유치하지 않은… 스릴러 댄스!


갑작스레 17년 세월을 건너 뛴 주인공. 그녀가 바뀐 삶을 인정하고, 적응하고, 변화시키는 과정을 지켜보는 동안, 지루하거나 진부하단 느낌은 조금도 들지 않았다. 마음을 부드럽게 간질이는 ‘옛 히트송’도 영화를 재미있게 보는 데 큰 몫을 해주었다. 제니퍼 가너의 화사한 패션 스타일은 덤이요, 앤디 서키스의 개성 넘치는 연기는 ‘약방의 감초’ 격. 여배우를 집중적으로 띄워주는 영화라 남자주인공이 다소 묻혀버릴 수도 있었으나, 마크 러팔로의 자연스러움은 그 ‘묻힘’마저 의도된 연기로 보이게 만들었다.

제니퍼 가너. 그녀라 어울렸고, 그녀라 빛났고, 그녀라서 사랑스러웠던…
마크 러팔로. 그가 나온다는 이유로 선택했던… [13 going on 30]
그 소중함을 다시금 깨닫게 해준 예쁜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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